총성 없는 세계대전의 그림자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이는 20세기 전쟁사를 회고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지금 이 시대에도 정확히 적용된다. 2025년의 지구촌은 마치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곳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전쟁은 더 이상 과거처럼 선포되는 것도 아니며, 특정 전장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일상의 한가운데에 스며들어 있으며, 국제 뉴스의 배경음처럼 조용하지만 무섭게 지속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명확한 개시일도 없고, 주요 당사국들의 공식적인 선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매일같이 드론과 미사일이 도시를 덮치고, 군복 입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으며, 민간인들은 피난길에 오른다. 누군가는 그것을 ‘국지전’이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지정학적 갈등’이라 명명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해 보면, 거대한 전쟁망의 형상이 드러난다. 세계대전이라는 말이 함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가 있지만, 현재의 상황은 과거 두 번의 세계대전을 연상시킬 만큼 위험하고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우리는 지금, 전통적 개념의 세계대전이 아닌, 다핵화되고 비선언적인, 그러나 전지구적 영향을 미치는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동과 유럽에서 이미 시작된 전면 충돌
중동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면전에 가까운 무력 충돌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2025년 6월, 이스라엘이 이란의 주요 핵시설을 선제 공격한 사건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나탄즈, 아락, 포르도, 파르친 등 핵 개발 거점으로 알려진 시설들이 타격을 입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은 수백 발의 미사일과 드론을 이스라엘 전역에 발사했다. 양국 모두 심각한 인명 피해를 입었으며, 수도 텔아비브와 이스파한, 테헤란 근교에서는 민간인 사망자 수가 수백 명에 이르렀다.
이 전쟁은 단순한 두 나라 간의 분쟁이 아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이 각각의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국제 에너지 시장과 해상 수송로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란의 미사일이 페르시아만의 유조선을 공격한 사건은 국제 유가를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이스라엘은 이에 맞서 드론 기술을 통해 원거리 타격 능력을 입증했다. 전문가들은 이 충돌이 중동의 새로운 지정학적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대륙에서 벌어지는 가장 치열한 군사 충돌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돈바스 지역을 중심으로 매달 수천 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고 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확대하고 있고, 러시아는 전면 동원령까지 단행하며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이 충돌은 단순히 영토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서방과 러시아 간의 냉전적 대립의 귀환이라 볼 수 있다. 냉전의 연장이자, 21세기적 양상의 무력 대결이다.
아시아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긴장
동아시아는 겉보기엔 평온하지만,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숨겨진 화약고’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로 주장하며 매년 수차례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으며, 대만 주변 해역과 공역은 이미 사실상의 분쟁 지역이 되었다. 미국과 일본은 대만 방어를 위한 군사적 협력체계를 강화하고 있고, 이는 중국의 반발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중국의 전투기와 군함이 대만 해협을 넘어오는 일이 반복되며, 무력 충돌의 가능성은 실시간으로 높아지고 있다.

또한 일본과 중국 사이에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유권 갈등이 존재하며, 한국과 일본은 독도를 둘러싼 역사적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다. 러시아와 일본은 북방 4개 섬에 대한 영토 문제로 군사적 긴장을 이어가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은 사드 배치와 관련된 군사적 불신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는 여러 나라들이 복잡하게 얽힌 긴장 구조 속에 놓여 있으며, 이는 국제 정치에서 중요한 전쟁 예비 공간으로 지목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역시 핵 보유국 간의 국경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카슈미르 지역에서는 총격전과 소규모 교전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 역시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소다. 이들 지역의 갈등은 핵무기의 존재로 인해 더욱 위험하다. 불안정한 체제, 영토 분쟁, 종교 갈등, 민족주의가 결합된 이들 국경은 한 발의 오판이 대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지역이다.
전쟁은 전장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현대 전쟁의 또 다른 특징은 ‘비가시성’이다. 총과 포만이 아니라 사이버 공격, 경제 제재, 정보전, 인공지능, 심리전이 주요 무기가 되고 있다. 사이버 전쟁은 이미 현실화되었으며, 러시아, 중국, 북한 등은 미국과 유럽의 금융, 통신, 방위 시스템을 향한 해킹을 감행하고 있다. 반대로 미국과 이스라엘도 중동 국가들에 대해 보복성 사이버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경제 제재 또한 강력한 전쟁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EU는 대규모 제재를 가했고, 이는 러시아의 경제뿐 아니라 세계 공급망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반도체, 에너지, 식량, 금융 시장 모두 제재의 영향권 안에 있으며, 일반 시민의 삶마저 위협하고 있다. 더 이상 전쟁은 군인과 무기만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일상 생활 속 전쟁의 흔적은 물가, 실업, 전력공급, 식량 가격에서 확인된다.
문화와 정보도 전쟁의 무기가 된다. 각국은 자국 내 여론을 조작하거나, 타국의 여론을 분열시키기 위해 SNS, 뉴스, 유튜브 등을 활용하고 있다. 진실은 사라지고, ‘진실처럼 보이는 것’이 여론을 이끄는 시대다. 세계는 지금, 사실상의 ‘지정학적 가짜뉴스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정보는 무기이며, 언론은 전선이다.
선언 없는 세계대전, 우리는 지금 그 속에 있다
이처럼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과 전쟁은 단순한 국지전이 아니다. 각각의 전쟁은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하나의 글로벌 전쟁망 속에 연결되어 있다. 지역별 분쟁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주요 강대국들이 서로 반대편에서 개입하고 있으며, 핵무기까지 동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세계대전은 없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는 명확한 선포 없이, 총동원 없이, 그러나 실질적 피해는 더욱 거대한 전쟁 상태에 놓여 있다. 과거의 전쟁은 탱크와 참호로 정의되었지만, 오늘날의 전쟁은 드론, 데이터, 해커, 여론, 경제, 외교, 종교, 기술로 이루어진다.

유엔과 국제기구는 이미 통제력을 상실한 지 오래며, 각국은 자국 이익 중심의 안보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부르지 않지만, 사실상 그 전개 중에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거대한 전쟁의 한 가운데 있다. 피난민이 되지 않았을 뿐이며, 총소리를 듣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로, 정보로, 감정으로 이미 이 전쟁의 피해자이자 참여자다. 역사는 훗날 오늘의 세계를 되돌아보며 말할 것이다. “그 전쟁은 아무도 시작하지 않았고, 누구도 끝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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