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o the B-Way] 앨리샤 키스의 성장서사가 뉴욕을 관통할 때 <Hell’s Kitchen>

브로드웨이의 심장을 울린 진심의 음악극,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2024년 브로드웨이는 한 편의 뮤지컬에 의해 다시금 숨을 고르고, 심장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히 유명 아티스트의 노래를 엮은 또 하나의 주크박스 뮤지컬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정직하게 담긴 서사였고, 한 도시의 기억을 감각적으로 엮은 무대였다. 뮤지션 앨리샤 키스(Alicia Keys)의 음악과 삶을 중심에 둔 뮤지컬 <Hell’s Kitchen>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 속에서 자기 서사를 통해 보편성에 닿고자 했던 진정성의 계보를 잇는다.

15살의 소녀 ‘Ali’는 1990년대 뉴욕 맨해튼의 한복판, 헬스 키친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오로지 딸을 지키기 위한 엄마의 엄격한 훈육, 불안정한 가족 관계, 거리의 위험, 그 속에서도 음악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려는 내면의 열망. 그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이 소녀는 때로는 폭발하고, 때로는 침묵하며, 음악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를 직면해간다. <Hell’s Kitchen>은 단순한 성공담도 아니고, 화려한 쇼도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아픔과 희망이 리듬에 실려 관객에게 다가오는 섬세한 자화상이다.

성장, 모성, 갈등 – 뉴욕의 거리에서 피어난 정체성의 내력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Hell’s Kitchen>의 중심 서사는 10대 소녀 Ali의 성장 이야기이다. 1990년대 중반, 뉴욕의 중심이자 사회적 긴장과 문화적 다양성이 뒤섞인 지역인 ‘헬스 키친’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하다. 극은 이 지역이 가진 도시적 풍경과 상징,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유색인종 싱글맘 가정의 현실을 생생하게 조명한다.

Ali의 어머니 ‘저지’는 강한 여성상이다. 가정폭력에서 벗어나 혼자 아이를 키우며, 뉴욕의 거친 현실로부터 딸을 지켜내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보호를 넘어 통제가 되고, 두 사람의 갈등은 뮤지컬의 긴장 구조를 이끈다. 이 갈등은 단순한 모녀 간의 대립이 아니라, 세대 간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이자, 여성들이 사회적 억압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생존 전략의 충돌로 읽힌다.

뮤지컬은 이러한 갈등을 감정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의 대화와 음악 속에 절제된 방식으로 녹여낸다. 때때로 교실에서, 거리에서, 계단 복도에서 오가는 일상적 순간들이 캐릭터의 내면을 더 깊이 드러낸다. 뮤지컬을 보는 동안 관객은 ‘Ali’라는 소녀가 자신의 이름을 진짜 목소리로 발음하는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그려내는 ‘정체성의 발견’이다.

앨리샤 키스의 음악,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재해석되다

앨리샤 키스는 이 작품의 뮤직 프로듀서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그녀의 음악은 무대 위에서 다시 태어난다. <Fallin’>, <No One>, <If I Ain’t Got You>, <Un-Thinkable>, <Girl on Fire> 등은 단순히 삽입된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선과 극의 흐름을 따라 세심하게 재배치되며 완전히 새로운 컨텍스트로 빛난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특히 <If I Ain’t Got You>가 어머니와 딸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장면에서 울려 퍼질 때, 이 곡은 더 이상 연인의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가 아니다. 그것은 가족 간의 진심을 갈구하는 절박한 호소로 변주된다. 이처럼 <Hell’s Kitchen>은 기존 음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데 성공한다. 주크박스 뮤지컬이 흔히 빠지는 단순한 ‘히트곡 나열’의 함정을 철저히 피하면서도, 음악의 대중성과 감정선을 고르게 유지한다.

앨리샤 키스는 기존의 히트곡 외에도 본 뮤지컬을 위해 여러 곡을 새롭게 작곡했다. 신곡들은 90년대의 뉴욕 거리에서 들려오는 혼합된 장르들—R&B, 힙합, 재즈, 가스펠—의 감성을 담아냈고, 이는 작품의 감정적 리얼리즘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한다. 또한 각 곡의 편곡 역시 브로드웨이 문법과 앨리샤 키스 특유의 음악 스타일이 균형을 이뤄, 도시적 감성과 극적 완성도를 동시에 갖추는 데 성공했다.

무대와 연기: 도시가 숨 쉬는 공간에서 살아나는 연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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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디자인은 뉴욕이라는 공간을 정교하게 재현한다. 헬스 키친의 고층 건물들, 아파트 복도, 지하철 플랫폼, 피아노 학원, 거리의 벤치 등은 거대한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대로 투사한다. 뉴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규정짓는 ‘구조적 인물’로 작용한다. 이 도시가 캐릭터에게 주는 억압과 가능성, 절망과 희망은 무대 위에서 살아 숨쉰다.

Ali 역의 말라이 조이 문(Maleah Joi Moon)은 이 작품의 심장이라 불릴 만하다.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신인이지만, 그녀는 뛰어난 연기력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소녀의 불안정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녀는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소녀 특유의 섬세함과 연약함을 표현하는 데 능숙하다.

Ali의 어머니 역은 브로드웨이 베테랑이 맡아, 강인하고 복합적인 여성 캐릭터를 완벽히 구현한다. 또한 피아노 선생님, 친구들, 거리의 예술가 등 주변 인물들도 생동감 있고 리얼하게 그려지며, 뉴욕이라는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대표한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 사이의 연대와 갈등, 갈망은 이 작품이 단순히 개인적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맥락을 포용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예술로 발화되는 사회적 메시지 – 흑인 여성,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존재

<헬스 키친>은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말한다. 이 작품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1990년대 뉴욕의 사회경제적 조건, 인종적 긴장, 교육의 불균형, 예술에 대한 진입장벽 등은 Ali의 성장 여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특히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은 다양한 상징과 현실 속에서 구체화된다. 이 작품은 그러한 정체성이 어떻게 억압을 넘고, 사회적 구조 속에서 발화될 수 있는지를 음악을 통해 증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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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뚜렷하다. 피아노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Ali의 갈망은, 단지 꿈을 좇는 소녀의 낭만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부여한 한계를 넘어서는 일종의 정치적 행위이자, 자기를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 음악은 이 작품에서 단지 배경이 아니라 ‘언어’이며, ‘저항’이며, ‘자기 선언’이다.

뮤지컬은 또한 여성들 간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모녀 간의 긴장, 여성 멘토와의 만남, 또래 여성들과의 우정은 모두 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여성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체하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오늘날 젠더 담론과도 깊게 호흡하며, 공연 이후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결론: 기억될 브로드웨이, 그리고 앨리샤 키스의 헌사

<헬스 키친>은 뉴욕이라는 도시가 만든 한 소녀의 이야기를, 음악과 무대를 통해 관객에게 깊이 전달하는 작품이다. 그것은 단순히 앨리샤 키스의 삶을 무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음악이 지닌 진심과 서사를 새로운 세대와 연결시키는 시도이며, 브로드웨이라는 공간이 여전히 사회적 발화를 위한 강력한 플랫폼임을 증명하는 증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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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음악이 개인을 구원하고, 공동체를 묶으며,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작용하는 순간, 우리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여전히 변화와 저항, 연대의 힘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헬스 키친>은 단지 쇼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도시의 심장 박동이자, 예술로 새겨진 한 시대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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