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K에서 ICN까지, 낯익은 긴 여정의 끝에서

나는 뉴저지에 살면서 뉴욕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40대 직장인이다. 매일 지하철과 바쁜 거리 사이를 오가며, 언제나 바쁜 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던 중, 몇 년 만의 긴 휴가를 얻어 처음으로 한국을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코로나 이후 ‘거리감’만큼이나 ‘호기심’도 커진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K-드라마, K-푸드, BTS까지. 어느새 한국은 뉴요커의 일상 대화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든 단어가 되었다. 그렇다면, 직접 경험해보자. 그렇게 나는 JFK 공항에서 대한항공 직항편에 몸을 실었다.
12시간이 넘는 비행. 뉴욕과 서울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멀었다. 하지만 진짜 낯섦은, 활주로에 바퀴가 닿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새벽 5시, 비행기 창밖으로 보인 인천공항의 전경은 뉴욕에서 익숙하게 봤던 그 어떤 공항과도 닮지 않았다. 너무나도 조용하고 정돈된 모습, 그것이 첫인상이었다.
처음 만난 공항, ‘정숙함’이라는 충격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랐다. JFK에서 도착 게이트까지 가는 동안의 복잡하고 정돈되지 않은 동선,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다국적 언어의 소음에 익숙했던 나는, 인천공항의 조용하고 매끄러운 공간에서 당황스러울 정도로 평온함을 느꼈다.

게이트와 입국 심사대를 잇는 긴 복도엔 작은 클래식 음악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고, 벽면은 대형 광고 대신 한국의 전통 문양이 담긴 디지털 아트로 장식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뛰지 않았고, 직원들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공항이 이렇게나 ‘조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화 충격이었다. 마치 고요한 도서관을 걷는 기분이었다.
입국 심사와 수하물, 20분 만에 끝나는 환상

미국에서는 ‘입국 심사’라는 단어 자체가 곧 ‘스트레스’다. JFK든 뉴어크든, 한 시간 이상 줄을 서는 것은 기본이고, 질문 몇 개에 기분이 상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인천공항에서는 전혀 달랐다. 자동화된 스마트게이트를 통해 여권을 스캔하고 지문을 인식하니 1분 만에 통과되었고, 짐 찾는 곳으로 내려가니 이미 내 캐리어가 컨베이어 벨트 위를 돌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도착 후 2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건 마법이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무심코 옆을 보니, 수하물 카트가 일렬로 정리되어 있었고, 카트를 모으는 직원이 웃으며 “웰컴 투 코리아”라고 인사를 건넸다. 공항의 효율성에 인간적인 환대까지 더해지니, 어느새 내 입에서는 “이 나라, 너무 잘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터미널이 아니라 문화 복합 공간
입국장을 나서자, 나를 맞이한 것은 수많은 여행객들…이 아니었다. 대신,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소규모 무대와 실내 조경이 어우러진 고요한 문화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한쪽에는 한복을 입은 체험 부스 직원들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전통 종이부채를 나눠주며 체험을 권유하고 있었고, 다른 쪽에는 한국 화풍의 민화를 전시한 작은 갤러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이 공항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공항은 대개 ‘통과하는 곳’이다. 그러나 인천공항은 분명히 ‘머무는 곳’, 더 나아가 ‘경험하는 곳’이었다. 어쩌면 이 공항 자체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압축판 같았다. 기술과 문화, 전통과 미래가 모두 이 공간에 공존하고 있었다.
면세점과 F&B, “출국 전에 한식 풀코스?”
출국장 쪽 면세 구역으로 이동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대한민국의 쇼핑 본능’이었다.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와 국내 뷰티 브랜드들이 어우러져 있었고, 매장마다 직원들이 영어로 능숙하게 설명을 도왔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닌, 일종의 전시 공간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감동했던 건 음식이었다. 뉴욕의 공항에서는 피자, 햄버거, 아시아계 음식은 패스트푸드 수준에 머무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인천공항에서는 비빔밥, 불고기 정식, 돌솥밥, 설렁탕 등 제대로 된 한식 메뉴가 고급스럽게 구성되어 있었다. ‘한식당’이라기보다 호텔 다이닝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덕분에 도착 직후에도, 출국 전에도 ‘한국 음식’을 완성도 높게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이런 음식점 옆에 스타벅스, 딘앤델루카, 버거킹, 교동짬뽕, 김밥천국까지 공존한다는 사실이었다. 그야말로 글로벌과 로컬이 함께 있는 식문화의 격전지 같았다.
디지털과 휴식의 절묘한 균형
뉴욕에서는 공항에서 충전기를 찾는 것이 곧 생존 게임이다. 하지만 인천공항은 다르다. 모든 대기 좌석마다 충전 포트가 있었고, 와이파이는 끊김 없이 빠르게 작동했다. 공항 공식 앱에서는 실시간 항공편 조회, 탑승 게이트 안내, 맛집 검색, 면세 쿠폰까지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AI 안내 로봇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며 방향을 안내해주는 장면까지 목격했다.

한편, 고단한 장거리 비행객을 위한 휴식 공간도 인상 깊었다. 무료 샤워실, 수면 공간, 안마 의자, 트랜짓 호텔, 명상실, 수면캡슐까지 다양한 형태의 휴식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어떤 공간도 ‘소란스럽지’ 않았다. 공항 전체가 ‘쉼의 공간’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

공항에서 도시로, 이동의 예술
시내로 나가기 위한 이동 역시 또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공항철도 A’REX 직통열차를 타면 서울역까지 43분. 도심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열차의 청결도, 정시성, 좌석 구조, 전광판 시스템 등이 마치 일본 신칸센 수준의 품질을 자랑했다.

교통카드인 T-Money는 입국장 바로 옆에서 즉시 구매할 수 있었고, 앱과 연동하여 실시간으로 대중교통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여행을 시작한 지 겨우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나는 벌써 ‘이 나라 너무 편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공항은 도시의 얼굴이다
누군가 그랬다. “공항은 도시의 첫인상이자, 마지막 인사다.” 뉴욕에 돌아갈 때, 나는 이 말이 정확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JFK에서 출발한 나는, 인천공항에서 처음 ‘한국’을 만났다. 그리고 그 첫인상은, 내가 이제껏 겪은 어떤 공항보다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천공항은 단지 비행기에서 내리고 타는 곳이 아니다. 그것은 여행자의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장소, 나라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한 공간, 그리고 한국이라는 문화의 압축판이었다.
나는 이 공항 하나만으로도, 한국 여행이 절반은 이미 성공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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