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중심에 자리한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는 단순한 도시 공원이 아니다. 빽빽한 마천루와 끊임없는 교통 소음 사이에서, 843에이커의 녹지는 도시의 폐이자 시민들의 공동 기억이다. 이곳은 뉴욕이라는 도시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방식, 그리고 민주주의가 공간적으로 구현된 형태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누구나 걸을 수 있고, 누구나 앉을 수 있으며, 누구나 같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이 장소는 160년 넘게 뉴욕 시민의 삶 속에 스며든 인간적 풍경 그 자체다.

1853년, 급속히 성장하던 뉴욕시는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공공의 정원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와 칼버트 복스(Calvert Vaux)가 설계한 ‘그린스워드 플랜(Greensward Plan)’이 채택되면서, 세계 최초의 근대적 도시공원이 탄생했다. 옴스테드는 센트럴 파크를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걷고 숨 쉴 수 있는 민주주의의 숲”으로 구상했다. 실제로 그는 이곳을 “Social Experiment in Democracy”, 즉 민주주의의 사회적 실험이라고 불렀다.
19세기 중엽의 미국 사회는 계급과 인종, 부의 격차가 뚜렷했다. 그러나 센트럴 파크 안에서는 부유층의 마차가 지나가는 길 옆으로 이민자 가족이 돗자리를 깔고, 노동자와 예술가가 함께 잔디 위에 누웠다. 각기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머무는 경험은 뉴욕이 추구하던 평등과 공공성의 실천이었다. 이 공원은 단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사회적 무대였다.
센트럴 파크는 또한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1954년 배우 조셉 패프가 시작한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Shakespeare in the Park)’는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지금도 여름이면 델라코트 극장에 수천 명의 관객이 몰린다. 뉴욕 필하모닉의 야외 콘서트, 재즈·댄스 페스티벌, 거리 공연까지, 공원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 생태계로 이어지는 장이 되었다.
영화 속에서도 센트럴 파크는 수없이 등장한다. 「When Harry Met Sally」의 벤치 장면, 「Home Alone 2」의 겨울 호수, 「Avengers」의 전투 장면 등 전 세계 관객이 스크린을 통해 ‘뉴욕’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대부분이 이 공원에서 비롯되었다. 자연과 인간, 예술과 일상이 공존하는 이 풍경은 도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이자, 뉴욕이라는 브랜드의 시각적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공원은 늘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1970년대, 뉴욕이 재정 위기와 범죄로 침체에 빠지자 센트럴 파크 역시 쓰레기와 낙서, 마약, 폭력으로 황폐해졌다. 그때 시민들이 직접 나섰다. 1980년, 자발적 기부와 봉사를 기반으로 한 ‘센트럴 파크 컨서번시(Central Park Conservancy)’가 설립되었다. 세금 없이 시민의 손으로 시작된 복원 운동은 10년 만에 공원을 되살렸다.
오늘날 센트럴 파크의 운영비 중 약 80%는 민간 기부로 충당된다. 2,5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공원의 정비와 관리에 참여하며, 이 모델은 전 세계 도시들이 벤치마킹하는 공공-민간 협력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제 이 공원은 ‘시가 관리하는 녹지’가 아니라, ‘시민이 함께 지켜내는 공공의 숲’으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공원의 의미를 새롭게 했다. 도시가 멈췄던 2020년, 센트럴 파크는 시민들에게 유일한 피난처였다. 병원 텐트가 설치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도 사람들은 이곳에서 숨을 돌렸다. 조깅, 산책, 요가, 단순한 햇빛 쬐기까지 — 일상의 모든 사소한 행위가 이곳에서 회복되었다. 2021년 봄에는 전년 대비 방문자가 60% 이상 증가했다.
‘Mindful Walk’나 ‘Community Yoga’ 같은 프로그램은 공원을 단순한 휴식의 공간을 넘어 정신적 치유의 장으로 확장시켰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Urban Healing Landscape’, 즉 도시의 치유 풍경이라 부른다. 빌딩의 그림자 속에서 인간이 본래의 리듬을 되찾는 곳, 그것이 센트럴 파크가 가진 치유의 언어다.
그러나 이 공원의 역사는 빛만큼 어두움도 함께 품고 있다. 센트럴 파크가 조성되기 전, 이 부지에는 자유 흑인과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마을, ‘세네카 빌리지(Seneca Village)’가 있었다. 1850년대, 뉴욕에서 가장 안정된 흑인 공동체였던 이 마을은 공원 개발을 이유로 강제 철거되었다. 그 기억은 한 세기 넘게 도시의 지도에서 사라졌다.

2000년대 들어 시민단체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세네카 빌리지의 역사가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현재 뉴욕시는 공원 내에 ‘Seneca Village Historical Marker’를 설치하고, 교육 프로그램과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그 기억을 복원하고 있다. 평등을 위해 세워진 공원이 불평등의 희생 위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센트럴 파크를 단순한 녹지에서 사회 정의의 상징으로 확장시켰다.
이 공원은 또한 뉴욕 시민의 집단적 목소리가 모이는 광장이기도 하다. LGBTQ+ 프라이드 행진, Black Lives Matter 추모식, 기후 행동 행진 등 수많은 사회 운동이 이곳을 무대로 펼쳐졌다. 서로 다른 신념과 정체성이 공존하지만, 결국 한 공간 안에서 포용과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센트럴 파크의 공공성이다.
최근에는 동물 학대 문제를 둘러싼 ‘공원 내 마차 운행 금지’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오랜 관광 전통을 지키려는 측과, 시대 변화에 맞춰 생태적 가치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선다. 또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소음, 쓰레기, 불법 행상 문제도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뉴욕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커뮤니티 링크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 중이다.
2025년, 북단에 개장한 ‘데이비스 센터(Davis Center)’는 공원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한다. 낙후된 라스커 풀을 대체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수영장과 아이스링크, 커뮤니티 센터 기능을 갖춘 이 시설은 공원의 북부 지역을 활성화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센트럴 파크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결국 센트럴 파크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민주주의 실험이다.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오가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걷고, 쉬고, 연주하고, 사랑한다.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키는 힘, 그것이 센트럴 파크의 본질이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계속 변하지만, 그 중심의 녹색은 변함없이 도시의 심장처럼 박동한다.
센트럴 파크는 오늘도 묻는다 —
“우리는 어떤 도시에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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