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eview] 혼탁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는가 ― 드라마 《탁류》

- 조선의 강을 빌려 오늘의 한국 사회를 묻다

한국 사극은 오랫동안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말해 왔다. 왕의 얼굴 뒤에 권력을 숨기고, 전쟁의 서사 속에 현실의 갈등을 투사해 왔다. 그러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탁류》는 그 전통적인 경로를 비껴간다. 이 드라마는 왕도, 궁궐도, 정치적 명분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나루터, 왈패, 상단, 그리고 법이 닿지 않는 공간을 중심에 놓는다.

《탁류》의 배경은 조선의 경강이지만, 이 공간이 던지는 질문은 지극히 현재형이다.
법은 존재하되 작동하지 않고, 정의는 옳지만 선택하기에는 너무 비싸며, 생존은 늘 타협을 요구한다. 이 드라마는 묻는다.
“혼탁한 흐름 속에서 개인은 어디까지 버텨야 하며,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조선 시대의 것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매일같이 마주하는 질문이다.

‘탁류’라는 은유 — 법은 있으나 작동하지 않는 사회

《탁류》의 제목은 곧 이 드라마의 세계관이다. 흐르는 물이지만 맑지 않고, 방향은 있으나 기준은 없다. 경강은 모든 것이 모이는 장소다. 돈, 사람, 정보, 폭력, 권력, 그리고 욕망이 이 강을 따라 오간다. 형식적으로는 국가의 영토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통치의 공백지대다.

[출처: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 채널]

이 설정은 현대 한국 사회의 특정 영역을 즉각적으로 연상시킨다.
법과 제도는 정교해졌지만,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규제는 있지만 예외가 있고, 처벌은 존재하지만 선택적으로 집행된다. 제도는 늘 존재하지만, 현실은 늘 제도의 바깥에서 움직인다.

경강에서 법은 상징에 가깝다. 포도청 관리 정천이 존재하지만, 그는 언제나 늦게 도착하거나, 이미 결정된 판 위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오늘날 많은 공공기관 종사자, 내부 시스템 안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직장인, 혹은 법과 제도의 보호를 기대하다 좌절한 시민의 얼굴과 겹쳐진다.

《탁류》는 ‘무법 사회’를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위험한 상태를 보여준다.
법이 있으되, 믿을 수 없는 사회.
이것이 혼탁함의 본질이다. 명확한 악이 존재하는 사회보다, 기준이 흐려진 사회가 더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드라마는 집요하게 보여준다.

시율의 초상 — 타락한 개인이 아니라 ‘적응한 시민’

주인공 시율은 흔히 말하는 영웅형 인물이 아니다. 그는 정의를 외치지 않고, 제도를 바꾸려 하지도 않는다. 과거에는 다른 삶을 꿈꿨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그는 왈패의 수장이며, 질서를 유지하는 폭력의 중심에 서 있다.

[출처: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 채널]

그러나 《탁류》는 시율을 단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인물을 통해 묻는다.
“이 사회에서 이상을 끝까지 붙드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시율은 패배자가 아니다. 그는 시스템을 읽었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비겁함이 아니라, 현실 감각의 결과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시율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다수 시민과 닮아 있다.

  • 부조리를 알지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사람
  • 구조적 불합리를 인식하지만, 개인의 삶을 우선하는 사람
  • 정의보다는 안정, 이상보다는 생존을 택한 사람

시율의 선택은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이 사회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탁류》가 불편한 이유는, 시율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그는 우리와 닮아 있다.

드라마는 묻는다.
“당신이 시율의 자리에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캐릭터 분석을 넘어,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윤리’가 어떤 조건 속에서 형성되는지를 되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최은과 정천 — 자본과 정의의 한계가 만나는 지점

《탁류》의 또 다른 축은 최은과 정천이다. 이 두 인물은 각각 자본과 정의를 대표하는 듯 보이지만, 드라마는 이들을 단순한 상징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인물들을 통해 자본과 정의가 모두 불완전한 선택지임을 드러낸다.

[출처: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 채널]

최은은 상단을 이끄는 인물로, 경제적 판단력과 주체성을 갖춘 여성이다. 그는 누군가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 협상하고 거래하며 살아남는 존재다. 그러나 그의 자율성은 언제나 제한적이다. 자본을 가졌지만 폭력 앞에서는 취약하고, 거래의 중심에 서 있지만 결정권은 온전히 쥐지 못한다.

이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성취를 이룬 개인, 특히 여성 리더들이 마주하는 현실과 닮아 있다. 자본은 자유를 보장하는 듯 보이지만, 구조적 권력 앞에서는 여전히 협상의 도구로 기능한다.

[출처: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 채널]

정천은 반대로 정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제도의 내부에 있으나, 제도의 한계를 가장 뼈아프게 체감하는 인물이다. 정의를 실행할수록 고립되고, 원칙을 지킬수록 주변을 잃는다. 그의 싸움은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그래서 더 처절하다.

이 두 인물은 현대 사회의 두 가지 환상을 무너뜨린다.

  • 자본이 있으면 자유로울 것이라는 믿음
  • 정의를 선택하면 보호받을 것이라는 기대
[출처: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 채널]

《탁류》는 이 두 환상이 모두 작동하지 않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세계는 결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드라마가 지금 만들어졌다는 사실

《탁류》가 던지는 질문은 새롭지 않다. 그러나 이 질문이 지금, 그리고 OTT 플랫폼을 통해 제기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 드라마는 한국 사회 내부를 향한 동시에, 글로벌 시청자를 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출처: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 채널]

혼탁한 사회, 작동하지 않는 제도, 개인에게 전가되는 윤리적 선택의 부담. 이는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탁류》는 조선이라는 배경을 통해, 보편적인 현대 사회의 구조적 피로를 드러낸다.

이 드라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영웅도, 구원도 없다. 대신 질문만 남긴다.

  • 우리는 언제부터 침묵을 합리적 선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 정의는 왜 늘 개인의 희생으로만 증명되는가
  • 혼탁한 흐름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과연 승리인가

《탁류》는 조선의 강을 흐르게 하지만, 그 물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적신다. 이 드라마가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출처: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 채널]

마무리하며

《탁류》는 잘 만든 사극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시대 사회에 대한 냉정한 보고서에 가깝다. 이 드라마는 과거를 낭만화하지 않고, 현재를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다. 이제,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질문이 끝내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탁류》는 오래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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