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o the B-way]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화려한 황금빛 무대 뒤에 남은 질문

황금빛 무대 위로 부활한 개츠비의 꿈

브로드웨이는 늘 화려함과 혁신으로 스스로를 증명해 왔다. 2024년 봄, 브로드웨이에 새롭게 오른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는 그 상징적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 원작 소설은 20세기 미국 문학의 정수로 꼽히며, ‘아메리칸 드림’의 화려한 외피와 그 안에 감춰진 허무를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무대에 옮긴다는 시도 자체가 브로드웨이의 도전 정신을 잘 보여준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뉴저지의 페이퍼 밀 플레이하우스에서 초연된 이후, 브로드웨이 무대로 옮겨진 <위대한 개츠비>는 개막 직후부터 언론과 관객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제레미 조던(Jeremy Jordan)이 개츠비 역을 맡고, 에바 노블레자다(Eva Noblezada)가 데이지 뷰캐넌을 연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팬덤의 기대는 충분히 달아올랐다. 뮤지컬계의 스타 캐스팅은 흥행 보증 수표와도 같았고, 공연장은 매일 관객들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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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시각적 화려함은 가히 압도적이다. 토니상 수상 경력을 지닌 디자이너 린다 조(Linda Cho)가 만들어낸 의상은 재즈 시대의 황금기를 세련된 감각으로 재현했고, 폴 테이트 드푸(Paul Tate dePoo III)의 영상 디자인은 스크린과 무대 장치를 넘나들며 마치 영화 같은 장면 전환을 가능케 했다. 황금빛 샹들리에가 무대를 가득 채우고, 파티 장면에서 폭죽과 조명이 한꺼번에 터져 나올 때, 관객은 ‘이것이야말로 브로드웨이’라는 탄성을 내뱉는다.

그러나 이 화려한 볼거리 속에서도 질문은 남는다. 무대가 빚어내는 황금빛 광채가 과연 원작이 지닌 씁쓸한 비극과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그것을 가려버린 것은 아닐까?

화려함과 공허함 사이에서 갈라진 평가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쇼-스코어(Show-Score) 같은 플랫폼에서는 ‘환상적인 무대 장치’, ‘강렬한 보컬’, ‘호화로운 배우진’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특히 제레미 조던의 노래와 연기는 “브로드웨이에서만 볼 수 있는 월드 클래스 퍼포먼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에바 노블레자다의 목소리는 파워풀하면서도 서정적이었고, 그녀가 부르는 솔로 넘버는 관객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평단의 목소리는 달랐다. Entertainment Weekly는 “눈부시지만 얕다(Glitzy but shallow)”는 평가를 내렸다. 원작이 지닌 사회적 비극과 계급적 성찰 대신, 멜로드라마와 로맨스가 전면에 배치되었다는 것이다. 뉴욕 포스트 역시 “과잉된 장치로 인해 원작의 섬세한 리듬이 사라졌다”고 혹평했다. 가디언은 좀 더 날카롭게 비판했다. “희극적 접근이 지나치며, 계급과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실종되었다”는 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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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평단의 혹평은 단순히 작품의 완성도 문제를 넘어 브로드웨이가 지닌 본질적 고민과도 연결된다. 브로드웨이는 오랫동안 대중성을 확보하면서도 예술성을 유지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개츠비>는 시각적 화려함을 통해 대중성을 강화했지만, 그 대가로 원작의 깊이를 희생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행 지표는 긍정적이다. 티켓 판매는 꾸준했고, 웨스트엔드 진출까지 확정되었다. 이는 <위대한 개츠비>가 가진 브랜드 파워와 무대적 매혹이 흥행성을 담보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비평적 완성도’와 ‘상업적 성공’ 사이에서, 이 작품은 후자를 선택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차세대 브로드웨이에 던지는 화두

그렇다면 <위대한 개츠비>는 차세대 브로드웨이를 대표할 만한 가치를 보여줄 수 있을까?

첫째,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의 시각적·기술적 진화를 잘 보여준다. 영상, 프로젝션, 화려한 조명과 세트는 마치 영화 속 장면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는 향후 브로드웨이가 무대와 스크린,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융합해 나갈지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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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 뮤지컬은 원작의 복잡한 상징과 사회적 맥락 대신 대중 친화적 서사를 택했다. 로맨스와 멜로드라마 중심의 구성은 문학적 배경이 없는 관객에게도 쉽게 다가가게 했으며, ‘어려운 브로드웨이’가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브로드웨이’라는 인식을 강화했다. 이는 브로드웨이가 추구하는 관객 저변 확대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셋째, 글로벌 확장성이다. 브로드웨이 개막 1년 만에 웨스트엔드 공연이 확정된 것은 단순한 성공이 아니다. 이는 브로드웨이가 향후 작품들을 글로벌 프랜차이즈화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시아와 유럽 투어로 이어질 가능성 역시 높다. 이 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향후 브로드웨이 콘텐츠가 어떻게 세계 시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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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마주할 질문을 던진다.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흥행과 화려함을 선택했지만, 그 과정에서 원작의 철학적 무게는 상당 부분 사라졌다. 이는 브로드웨이가 앞으로도 풀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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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모순된 성취다. 황금빛 무대와 화려한 배우진, 세련된 연출로 브로드웨이의 매혹을 증명했지만, 동시에 원작의 본질적 깊이를 가리지 못했다는 한계 역시 분명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차세대 브로드웨이가 어떤 길을 걸을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과도 같다. 시각적 진화, 대중 친화, 글로벌 확장—그 모든 장점 속에서 스토리와 메시지를 어떻게 지켜낼지가 앞으로의 브로드웨이에 던져진 숙제다.

화려한 파티가 끝난 뒤 남는 건 언제나 허무다. 개츠비가 그러했듯, 브로드웨이 역시 황금빛 조명 뒤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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