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o the B-Way] 브로드웨이 신작 뮤지컬 《Redwood》 리뷰

비주얼은 숭고하되, 정서는 얕다 — 이다나 멘젤의 귀환과 한계

슬픔의 숲에서 길을 잃은 이야기

2025년 2월, 브로드웨이 네덜랜더 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Redwood》는 출연진, 제작진, 무대 연출 등 화려한 면면으로 개막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다나 멘젤(Idina Menzel)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은, 오랜 팬들과 브로드웨이 관계자들 모두의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공연을 직접 접한 관객과 비평가들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시각적 경험은 확실히 강렬했지만,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정서적 깊이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줄거리는 단순하다. 뉴욕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던 ‘제시'(멘젤 분)는 아들을 잃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다. 이를 극복하고자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숲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삶을 회복하려는 여정을 그린다. 일종의 치유 서사(Healing Narrative)라 할 수 있지만, 그 전개 방식은 예상 가능한 선형 구조로 흐르며, 깊은 감정을 끌어내는 데에는 다소 실패하고 만다.

비평가들은 《Redwood》가 “슬픔은 어렵다”는 단순한 명제를 반복적으로 되뇌일 뿐, 그 안의 복잡한 인간 심리를 입체적으로 구현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주인공의 상실감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은 외형적으로 묘사될 뿐, 관객에게 실질적인 정서적 공명을 이끌어내는 데는 미흡했다는 평가다.

무대 위에 펼쳐진 숲, 그 장엄함과 혼란

《Redwood》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는 단연 무대 연출과 영상 디자인이다. 실제 브로드웨이 무대에 고정된 원통형 구조물 위에 360도 LED 프로젝션을 활용하여, 거대한 레드우드 숲의 캐노피를 표현하는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무대와 자연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특히 객석 천장까지 확장되는 영상 연출은 마치 숲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는 감각을 제공한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이러한 연출은 단순한 무대 세트를 넘어서, 몰입형 시네마-극장 체험의 경계에 다가선다. 장면 전환도 빠르고 다층적이며, 무대 상단에서 줄에 매달린 배우들이 공중을 유영하는 장면은 실제 ‘숲의 생태계’를 무대 위에 구현한 듯한 생생함을 전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적 화려함은 때로는 서사 전달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일부 관객은 “눈이 너무 바빠 대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는 반응을 보였고, 실제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관객의 몰입을 이끄는 데 성공하면서도, 스토리와 연기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연출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멘젤의 귀환과 논쟁적 평가

브로드웨이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Wicked》의 엘파바, 《Rent》의 마우린으로 잘 알려진 이다나 멘젤(Idina Menzel)이 《Redwood》로 돌아왔다는 점은 이 작품의 가장 큰 화제였다. 하지만 멘젤의 이번 무대 복귀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우선, 멘젤의 존재감은 여전히 빛난다.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 감정을 끌어올리는 능력, 그리고 공중에서 벨팅을 시도하는 대담함은 오직 그녀만이 가능한 퍼포먼스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는 “멘젤의 고음이 예전만 못하다”며, 특히 고조된 클라이맥스에서의 보컬의 불안정성을 지적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노래뿐 아니라 연기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존재했다. 제시라는 인물은 큰 상실을 겪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그 감정을 진심으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평이 많았다. 이는 멘젤 개인의 연기력보다는 대본과 캐릭터 구축의 약함에서 기인한 한계로 보인다.

그럼에도 멘젤이 《Redwood》를 통해 또 한 번 브로드웨이 무대에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예술적 모험은 유의미하다. 단지, 그 결과물이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클래식’이 되기엔 아직 아쉬움이 많다.

감성적 숲을 꿈꿨으나, 메시지는 흩날렸다

《Redwood》는 명백히 환경 문제와 인간의 내면 회복이라는 중첩된 테마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대본에는 다수의 시적 문장과 나무에 대한 상징이 반복되고, 무대 장치도 “숲은 나의 내면”이라는 철학을 시각화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의 다층성은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 채, 무대 위에서 흩어져 버리는 인상을 남긴다. 대사에는 생태계 파괴, 도시 문명의 피로감, 상실의 트라우마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요소가 등장하지만, 각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흩어진다.

음악 또한 그러한 단절감을 가중시킨다. 작곡가의 의도는 명확하다 — 포크, 팝, 재즈, 어쿠스틱 등 다양한 장르를 활용해 숲의 다채로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몇몇 곡은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반복적인 구성을 택해, 서사의 흐름에 브레이크를 거는 결과를 낳았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감정의 깊이다. 이 작품이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얼마나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감정을 전하려는 ‘의도’는 강하지만, ‘감정 자체’는 불완전하게 전해진다. 관객이 눈물을 흘리는 대신, 의자에 편히 기대어 시각적 장관을 감상하게 되는 순간, 《Redwood》는 감정극이 아닌 무대 전시물로 변모하고 만다.

‘크고 아름답지만 얕은’ 브로드웨이 신작

《Redwood》는 분명 시도 자체로 가치 있는 작품이다. 감정적 내러티브를 숲이라는 시적 공간과 결합시키고, 시청각적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무대 예술의 확장을 꾀한 점은 인상적이다. 또한 이다나 멘젤이라는 배우의 참여는 이 실험을 실현 가능하게 한 가장 큰 동력이었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그러나 감정과 서사의 연결 고리가 약하고,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핵심인 음악이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점은 큰 한계로 작용한다. ‘보여주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전달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평은 어쩌면 이 작품을 가장 정확히 요약하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Redwood》는 “보러 갈 만한 공연”이지만, “다시 보고 싶은 공연”이 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숲은 웅장했고, 배우는 진지했으며, 무대는 눈부셨지만, 극장의 조명이 꺼진 후 마음에 남는 잔상은 너무나 희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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