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를 비틀다 ― “만약 줄리엣이 죽지 않았다면”
브로드웨이의 최신 히트작 & Juliet은 묘하게도 우리에게 낯익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이 비극적으로 막을 내린 뒤, 줄리엣이 만약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아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면 어떨까? 바로 이 상상력의 전환이 작품 전체를 이끄는 원동력이자, 이 뮤지컬이 지닌 가장 혁신적인 출발점이다.

작품의 각본을 맡은 데이비드 웨스트 리드(David West Read)는 이미 TV 시리즈 Schitt’s Creek을 통해 재기 발랄한 대사와 파격적인 설정으로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줄리엣이라는 캐릭터를 다시 불러내어, 16세기 비극의 잔해 위에서 21세기 여성의 자율성과 선택권을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셰익스피어 본인과 그의 아내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 동명의 배우가 아닌 극작가의 실제 배우자)가 무대에 등장해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두고 다투며 극을 이끌어 간다는 점이다. 즉, & Juliet은 단순히 원작을 비트는 것이 아니라, 창작 그 자체의 권력과 목소리를 문제 삼는 작품인 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특별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단지 플롯의 재해석 때문만은 아니다. 이 무대는 세계적인 팝 프로듀서 맥스 마틴(Max Martin)이 수십 년간 만든 히트곡들을 젤라토처럼 색색이 엮어 올린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Baby One More Time”,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Larger Than Life”, 케이티 페리의 “Roar”, 본 조비의 “It’s My Life”, 아리아나 그란데의 “Problem”까지, 90년대 말에서 2010년대를 대표하는 팝 명곡들이 줄리엣의 성장 서사와 절묘하게 맞물리며 전개된다.

관객은 극장을 나서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자신의 청춘 시절 클럽과 라디오 속으로 돌아간 듯한 향수를 맛본다. 하지만 동시에 작품은 고전을 해체하고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21세기적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요소 ― 과거의 팝 음악과 현재의 젠더 감수성 ― 의 결합이 바로 & Juliet을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게 한 비밀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계보와 & Juliet의 자리매김
뮤지컬의 역사를 돌아보면, & Juliet은 단절이 아닌 흐름 속의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 이른바 주크박스 뮤지컬의 전통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특정 가수나 작곡가의 히트곡을 바탕으로 새로운 서사를 엮어내는 장르를 말한다. 1970년대 Ain’t Misbehavin’ 같은 작품에서 시초를 찾을 수 있고, 1990년대 말 *Mamma Mia!*가 ABBA의 노래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인 붐을 일으켰다. 이후 Jersey Boys, Beautiful: The Carole King Musical, Rock of Ages, Tina: The Tina Turner Musical, MJ the Musical 등 수많은 작품이 이 장르를 확장시켜왔다.

이들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특정 뮤지션의 삶을 그 자체로 무대화하는 바이오그래픽 형식(Jersey Boys, Tina 등), 다른 하나는 기존 노래를 새로운 이야기에 끼워 넣는 픽션 형식(Mamma Mia!, & Juliet 등)이다. & Juliet은 후자의 계보를 잇는다. 하지만 단순히 노래를 삽입하는 수준을 넘어, 노래 자체가 줄리엣의 감정선과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드라마틱한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줄리엣이 새로운 독립을 선언하는 순간에는 케이티 페리의 “Roar”가 터져 나오고, 로미오의 귀환 장면에서는 본 조비의 “It’s My Life”가 울려 퍼진다. 이 곡들은 원래의 맥락에서는 단순한 팝 히트곡이지만, 극 속에서 다시 배치되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즉, 대중음악은 단순히 배경 음악이 아니라 서사의 또 다른 언어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방식은 때때로 ‘뮤지컬의 깊이가 얕아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평론가는 & Juliet이 플롯의 복잡성이나 정교함보다는 흥겨운 팝 넘버와 화려한 무대 효과에 의존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품이 젊은 세대, 특히 브로드웨이에 낯선 관객층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로 & Juliet의 평균 관객 연령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 가장 젊은 층에 속한다. 이는 곧 주크박스 뮤지컬의 본질 ― 대중성과 접근성 ― 을 가장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무대 위의 별들 ― 로나 코트니와 베시 울프, 그리고 새로운 스타들
뮤지컬에서 이야기를 살리는 것은 언제나 배우다. & Juliet은 이 점에서도 풍부한 화제를 낳았다. 무엇보다 초연 당시 줄리엣을 연기한 로나 코트니(Lorna Courtney)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카리스마로 단숨에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그녀는 2023년 토니 어워드 뮤지컬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녀의 줄리엣은 더 이상 수동적이고 비극적인 소녀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주도하는 당당한 젊은 여성이다.

줄리엣의 곁에서 극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하는 인물은 바로 셰익스피어의 아내 앤 해서웨이다. 이 역할을 맡은 베시 울프(Betsy Wolfe) 역시 토니상 후보에 오르며 작품의 흥행을 견인했다. 울프는 기민한 유머와 진지한 울림을 동시에 전달하며, 남편 셰익스피어와의 대화 속에서 창작의 권력, 여성의 목소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생생하게 풀어낸다.
최근에는 세계적 보컬 코치이자 틱톡 스타인 셰릴 포터(Cheryl Porter)가 ‘앙젤리크’ 역으로 새롭게 합류했다. 2025년 여름부터 13주간 무대에 오르며, 그녀 특유의 강렬한 보컬과 카리스마로 관객에게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고 있다.
이처럼 & Juliet은 스타 캐스팅과 신예 발굴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각 배우는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며, 팝 음악과 연극적 대사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그 결과 관객은 콘서트장 같은 에너지와 극적 몰입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화려한 무대, 논쟁적인 평가 ― 브로드웨이에서의 의미
& Juliet은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꾸준히 흥행을 이어가며 극장 박스오피스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2023년 연말, Stephen Sondheim Theatre에서 자체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브로드웨이의 확실한 흥행 카드’로 자리 잡았다. 토니상에서 9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시상식 성과도 뒤따랐다.

그러나 모든 평가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부 비평가는 “스토리가 지나치게 단순하다”, “팝송을 억지로 끼워 맞췄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The Guardian은 이를 “최대한 화려하게 꾸몄지만 동시에 피상적일 수 있는 작품”이라 평했고, Entertainment Weekly는 B+라는 점수를 주며 “재기 넘치고 퀴어적 감수성을 드러내며 Z세대 관객에게 셰익스피어를 새롭게 소개하는 시도”라는 긍정과 비판을 동시에 기록했다.
반면 관객들의 반응은 뜨겁다. 쇼-스코어(Show-Score) 평균 평점은 80%를 넘었고, 무엇보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SNS에는 “팝 콘서트 같은 뮤지컬”,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는 반응이 넘쳐난다. 이는 비평가와 관객의 시선이 갈릴지언정, 작품이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에는 전혀 손색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화적 맥락에서 보자면, & Juliet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중 하나를 상징한다. 전통적 클래식이나 오리지널 넘버 중심의 뮤지컬이 점차 고전적인 위치를 지켜가는 동안, 대중음악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젊은 관객을 끌어들이는 전략은 공연 예술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 방안이기도 하다.
& Juliet은 바로 그 경계에 서 있다. 예술성과 상업성, 전통과 현대, 고전과 대중 사이의 긴장을 안고서도, 결국 관객에게 ‘즐거움’과 ‘공감’을 전달한다.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세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뮤지컬 ― 그것이 바로 & Juliet의 현재이자, 앞으로의 의미다.

브로드웨이 무대 위에서 & Juliet은 단순한 흥행작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줄리엣은 더 이상 비극의 희생양이 아니다. 그녀는 스스로의 선택을 하고, 21세기 팝송의 힘을 빌려 관객과 함께 춤추며 노래한다. 이 작품은 고전을 해체하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고, 대중성을 강조하면서도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극장을 나설 때 마음속에 남는 것은 단순한 멜로디나 화려한 무대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만약 내가 줄리엣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나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이야말로, 셰익스피어 시대를 넘어 오늘날 브로드웨이까지 살아남은 문학과 공연 예술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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