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Grandaisy Bakery’
Grandaisy Bakery는 뉴욕에서 흔히 회자되는 ‘핫플레이스’ 목록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에서 폭발적으로 회전하는 비주얼도 없고, 주말마다 줄이 블록을 감싸는 장면도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 베이커리는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거의 같은 방식으로 뉴욕의 하루를 지탱해 왔다. 누군가에게는 “늘 거기 있는 빵집”,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뉴욕이 아직 뉴욕이던 시절의 맛”으로 기억되는 곳. Grandaisy Bakery는 유행을 좇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뉴욕다운 장소가 되었다.

이 글은 Grandaisy Bakery를 단순한 맛집 리뷰가 아니라, 뉴욕 도시 문화 속에서 ‘빵’이 어떤 의미를 가져왔는지를 추적하는 리뷰 기획이다. 뉴욕·뉴저지 인근에 거주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지나쳤을 이 베이커리가, 왜 20년 넘게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왜 여전히 의미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996년의 뉴욕, 그리고 Grandaisy의 등장
Grandaisy Bakery는 1996년 문을 열었다. 지금의 뉴욕을 기준으로 보면, 그 시기는 마치 다른 도시처럼 느껴진다. 아티장 브레드, 사워도우, 천연 발효라는 개념은 일부 셰프와 미식가들의 언어였고, 대다수 뉴요커에게 빵은 여전히 “슬라이스된 흰 식빵”에 가까운 존재였다.

Grandaisy는 이 시점에서 유럽식 빵 철학을 거의 타협 없이 들고 들어왔다. 장시간 발효, 천연 효모, 인공 개량제 최소화. 이는 단지 조리법의 차이가 아니라, 빵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였다. 빵은 빠르게 소비되는 간식이 아니라, 하루의 식사를 구성하는 기본 식재료라는 인식. 이 철학은 이후 뉴욕 베이커리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요한 점은 Grandaisy가 처음부터 ‘혁신’을 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곳은 스스로를 트렌드세터로 포지셔닝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믿는 방식으로 매일 빵을 굽겠다”는 태도를 유지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태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화려함을 거부한 공간, 트라이베카라는 선택
Grandaisy Bakery의 대표적인 거점은 트라이베카(Tribeca)다. 이 지역은 소호처럼 관광객으로 붐비지도 않고, 미드타운처럼 속도감이 있지도 않다. 오래된 창고 건물과 주거 공간, 소규모 상점들이 섞여 있는 이 동네는 Grandaisy의 성격과 닮아 있다.
매장 내부는 놀라울 정도로 절제되어 있다. 과도한 장식도, ‘사진 찍기 좋은’ 연출도 없다. 빵이 진열된 선반, 작업대, 그리고 커피 머신.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빵 냄새와 조용한 대화뿐이다. 이곳에서는 빵이 주인공이고, 공간은 그 빵을 방해하지 않는 역할에 머문다.
뉴욕의 수많은 베이커리들이 공간 브랜딩에 막대한 에너지를 쏟는 동안, Grandaisy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는 보수성이라기보다, 공간이 아니라 제품으로 기억되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Grandaisy의 빵은 왜 ‘조용한가’
Grandaisy Bakery의 빵을 처음 접하면, 어떤 사람들은 다소 밋밋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버터 향이 과하게 튀지 않고, 단맛도 절제되어 있다. 그러나 몇 번 먹다 보면 이 빵의 성격이 분명해진다. 한 번의 인상을 남기기보다는, 반복을 전제로 설계된 맛이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워도우는 산미가 과하지 않고, 크러스트는 단단하지만 거칠지 않다. 통밀이나 라이 브레드 역시 ‘건강식’이라는 이미지를 과도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곡물의 맛이 중심에 있고, 발효 향이 뒤에서 천천히 따라온다.
이 빵들은 혼자서 주인공이 되기보다, 음식과 함께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수프, 샐러드, 치즈, 혹은 단순히 올리브 오일과 소금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는 Grandaisy가 빵을 요리의 일부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뉴욕 레스토랑 산업과 Grandaisy의 관계
Grandaisy Bakery는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베이커리이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뉴욕 레스토랑 업계에서 신뢰받는 공급처로 기능해 왔다. 화려한 마케팅 없이도 셰프들이 이 빵을 선택해 온 이유는 단순하다. “안정적이고,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빵은 매번 맛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계절과 습도, 밀가루 상태에 따라 미세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인 구조와 풍미는 유지되어야 한다. Grandaisy는 이 점에서 매우 보수적이다. 새로운 레시피를 실험하기보다, 기존의 방식을 지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이러한 태도는 소비자에게는 다소 ‘지루함’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업계에서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미덕 중 하나다. Grandaisy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
뉴욕에서 음식 트렌드는 빠르게 생성되고, 더 빠르게 사라진다. 몇 년 전만 해도 줄을 서야 했던 가게들이 어느새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Grandaisy의 존재는 거의 예외처럼 느껴진다.
이 베이커리는 SNS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계절 한정 메뉴로 소비자의 불안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대신, 항상 같은 빵을, 같은 방식으로 제공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손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강력한 신뢰를 만든다.

뉴욕·뉴저지 지역에 거주하는 독자들에게 이 점은 낯설지 않다. 이 지역에는 오래된 델리, 피자 가게, 베이커리들이 많다. 그곳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항상 거기 있어서’가 아니라, 항상 같은 맛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Grandaisy는 바로 이 전통을 계승하는 베이커리다.
팬데믹 이후에도 남아 있다는 사실
코로나19 팬데믹은 뉴욕 외식 산업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수많은 레스토랑과 베이커리가 문을 닫았고, 살아남은 곳들 역시 운영 방식을 크게 바꿔야 했다. Grandaisy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만, 이곳은 급격한 변화를 택하지 않았다.
온라인 주문과 테이크아웃을 강화하면서도, 제품의 성격 자체를 바꾸지는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트렌드가 아니라,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유효했다. 팬데믹 이후에도 Grandaisy는 여전히 같은 빵을 굽고 있다.
이 사실은 단순한 생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도시가 흔들릴 때, 어떤 장소가 남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기 때문이다.
Grandaisy Bakery를 다시 생각해보며
Grandaisy Bakery는 화려하지 않다. 리뷰 한 줄로 감탄을 끌어내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이 베이커리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일상을 유지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같은 방식으로 빵을 굽고, 같은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 이 반복 속에서 도시는 지속된다.
뉴욕·뉴저지 독자에게 Grandaisy는 굳이 ‘목적지’가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일상의 일부로 존재할 때 가장 의미 있는 장소다. 주말 브런치를 위해 일부러 찾아갈 수도 있지만, 평일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러 빵 한 덩이를 사는 경험이 이곳을 더 잘 설명한다.
Grandaisy Bakery는 말한다.
“우리는 늘 여기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 조용한 선언이야말로, 지금의 뉴욕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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