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의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는 반항과 자유, 그리고 전위적인 예술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동네다. 펑크 록의 거친 사운드가 울려 퍼지던 클럽과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즐비했던 이곳의 거리는 지금, 전 세계의 미식 트렌드를 가장 먼저 흡수하고 재창조하는 용광로가 되었다. 이 역동적인 동네의 한가운데, 2번 애비뉴에 자리 잡은 ‘Uluh(葫芦)’는 단순한 중식당이라는 수식어를 거부하는, 가장 이스트 빌리지다운 방식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공간이다. 2019년 문을 연 이래, Uluh는 전통적인 중국 요리의 경계를 허무는 과감한 시도와 현대적인 예술 감각, 그리고 차(茶)에 대한 깊은 존중을 한데 엮어내며 뉴욕의 까다로운 미식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이곳은 저녁 식사를 위한 레스토랑인 동시에, 고요한 사색을 위한 찻집이며, 때로는 친구들과의 활기찬 교류를 위한 라운지 바가 되기도 한다. 과연 Uluh가 내어놓는 호리병 속 세상은 어떤 맛과 멋으로 가득 차 있을까. 본지는 그 복합적인 매력의 실체를 찾아 떠났다.
공간 그곳의 미학
Uluh의 경험은 음식을 맛보기 전,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레스토랑의 이름인 ‘Uluh’는 조롱박 혹은 호리병을 의미하는 중국어 ‘葫芦(húlú)’에서 따왔다. 예로부터 호리병은 별도의 작은 우주를 담고 있는 신비로운 물건으로 여겨졌는데, Uluh는 그 이름처럼 맨해튼의 번잡한 거리와는 완전히 분리된 자신들만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 보인다. 높은 천장 아래로는 따뜻한 느낌의 목재 빔이 지나가고, 한쪽 벽면은 섬세한 문양으로 레이저 커팅된 거대한 금속 스크린이 장식하고 있어 동양적인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테이블과 좌석은 넉넉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며, 공간 곳곳에 놓인 드라이플라워와 식물들은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인테리어에 생기와 온기를 불어넣는다.

이 평온한 젠(Zen) 스타일의 공간에 가장 뜻밖의 파격을 더하는 것은 바로 벽면에 걸린 거대한 앤디 워홀의 마오쩌둥 팝아트 초상화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고요함과 도발이라는 극단적인 요소들의 충돌은 이 공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이는 Uluh가 추구하는 요리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전통 중국 요리의 뿌리를 존중하되, 뉴욕이라는 다문화 도시의 현대적인 감각과 에너지를 과감하게 수용하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저녁 시간이 깊어지면 때로는 감각적인 힙합 음악이 공간을 채우는데, 이 또한 고정관념을 깨는 Uluh만의 독특한 분위기 메이킹 방식이다.
공간은 목적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한다. 입구 쪽 바(Bar)와 다이닝 홀은 친구들과의 활기찬 저녁 식사나 데이트를 즐기는 이들로 북적이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다 조용하고 아늑한 좌석들이 마련되어 있어 진지한 대화나 비즈니스 미팅을 갖기에도 손색이 없다. 특히 이 공간의 백미는 바로 ‘티 세레모니’를 위한 자리다. 전문 티 마스터가 정성스럽게 차를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온전히 차의 맛과 향에 집중할 수 있는 경험은, 이곳이 단순한 식당이 아닌 ‘티 하우스’로서의 정체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Uluh는 잘 짜인 무대처럼, 방문객이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에 따라 그에 맞는 최적의 분위기와 배경을 제공한다. 이곳에서의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잘 기획된 하나의 문화적, 공간적 경험으로 승화된다.
맛의 향연: 전통의 경계를 허무는 요리와 차(茶)의 미학
Uluh의 메뉴판은 그들의 공간만큼이나 복합적이고 야심 차다. 광둥식 딤섬부터 사천의 얼얼한 매운맛, 상하이의 섬세함, 그리고 베이징의 웅장함까지, 광활한 중국 대륙의 미식 지도를 한곳에 응축해 놓았다. 이는 특정 지역의 전문성을 내세우는 일반적인 중식당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다. 이러한 방대한 스펙트럼은 때로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최고의 맛을 찾아내려는 그들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미식 여정의 시작은 단연 차(茶)가 맡아야 한다. Uluh는 30가지가 넘는 최고급 중국 및 대만 차 리스트를 갖추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로즈 골드피쉬(Rose Goldfish)’는 이곳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메뉴다. 투명한 유리 주전자 안, 작은 낚싯대에 매달린 금붕어 모양의 티백이 뜨거운 물 속에서 우아하게 헤엄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詩)와 같다. 금붕어 티백 안에는 향긋한 장미 우롱차가 담겨 있어, 시각적인 즐거움과 함께 후각과 미각의 만족까지 선사한다. 이는 차를 단순히 마시는 음료가 아닌, 오감을 통해 즐기는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려는 Uluh의 철학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음식 메뉴 중 두 개의 기둥을 꼽으라면 단연 ‘흑설탕 피킨 덕(Brown Sugar Glazed Peking Duck)’과 ‘크랩 토푸(Crab Tofu)’다. 북경 오리구이는 많은 중식당에서 만날 수 있는 메뉴지만, Uluh의 피킨 덕은 흑설탕 글레이즈를 입혀 차별화했다. 바삭하게 구워진 껍질은 캐러멜처럼 달콤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자랑하고, 속살은 촉촉하고 부드러워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함께 제공되는 얇은 전병과 채소를 곁들여 먹는 맛은 가히 일품이다. 크랩 토푸는 부드러운 연두부 위에 진한 게살 소스를 듬뿍 올린 요리로, 겉보기에는 소박하지만 입안에 넣는 순간 녹아내리는 듯한 식감과 게살의 풍부한 감칠맛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을 내어,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이나 아이들도 모두 즐길 수 있는 메뉴다.
보다 강렬한 미각적 경험을 원한다면 사천 요리 섹션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청두 마라 생선찜(Fish in Green Peppercorn)’은 신선한 생선살을 풋산초와 고추기름에 끓여내, 혀끝을 짜릿하게 마비시키는 얼얼함(麻)과 칼칼한 매운맛(辣)의 정수를 보여준다. ‘랍스터 마파두부(Lobster Mapo Tofu)’는 전통적인 마파두부에 고급 식재료인 랍스터를 더해 한 차원 높은 요리로 재탄생시킨 메뉴다. 이 외에도 바삭한 파전 위에 부드러운 오리채를 올린 ‘파오리 팬케이크와 오리채(Scallion Pancake w. Shredded Duck)’나, 육즙 가득한 ‘샤오롱바오(Shanghai Pork Soup Dumplings)’와 같은 딤섬 메뉴들 역시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Uluh의 주방은 광활한 중국 요리의 스펙트럼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때로는 대담하게, 때로는 섬세하게 변주하여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맛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경험과 평가: 높은 가격과 서비스 편차, 그럼에도 가야 하는 이유
Uluh에서의 경험은 분명 특별하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되는 현실적인 장벽은 바로 가격이다. 맨해튼의 다른 고급 중식당들과 비교해도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대는 일부 고객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시그니처 메뉴인 피킨 덕이나 랍스터 요리의 경우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훌륭한 음식과 분위기를 고려하면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의견과, “가격에 비해 맛이나 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의견이 공존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서비스 역시 방문 시점과 상황에 따라 편차가 크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직원들이 매우 친절하고 메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어 감동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주말 저녁 바쁜 시간에는 주문이 누락되거나 음식이 나오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직원들이 무례하고 불친절했다”는 혹평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높은 인기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일 수 있지만, 음식 가격에 걸맞은 일관된 서비스 품질을 확보하는 것은 Uluh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또한, 워낙 방대한 메뉴를 다루다 보니 모든 요리가 최고의 맛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소위 ‘히트 앤 미스(hit-or-miss)’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시그니처 메뉴들은 대부분의 방문객에게 찬사를 받지만, 덜 알려진 메뉴를 주문했을 경우에는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첫 방문이라면 앞서 언급한 피킨 덕, 크랩 토푸, 그리고 사천 요리 중 대표 메뉴를 중심으로 주문하는 것이 실패 확률을 줄이는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luh는 한번쯤 방문해 볼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수많은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독창적인 컨셉과 매력적인 공간,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맛의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단순히 ‘맛있는 중식’을 먹으러 가는 곳이라기보다는, 차와 예술, 그리고 음식이 어우러진 하나의 종합적인 문화 체험을 하러 가는 곳에 가깝다. 평범한 저녁 식사에서 벗어나 시각과 미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이스트 빌리지의 이 신비로운 호리병 속으로 과감히 발을 들여놓아도 좋을 것이다. Uluh는 당신에게 익숙했던 중식의 경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그 즐거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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