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인골슈타트의 공단 지대는 한 세기 넘게 ‘기술의 심장’으로 불려왔다. 이곳에서 탄생한 자동차 브랜드 아우디(Audi)는 독일 산업의 자존심이자 정밀공학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의 전통 위에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쌓고 있다. 전동화, 인공지능, 자율주행, 그리고 지속가능성. 아우디는 이런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서 스스로를 다시 정의하는 중이다. 여전히 “기술을 통한 진보(Vorsprung durch Technik)”라는 슬로건을 내세우지만, 그 기술의 방향과 의미는 과거와 전혀 다르다.
Ⅰ. 네 개의 고리에 담긴 기술의 기억
아우디의 뿌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립자 아우구스트 호르히(August Horch)는 1899년 쾰른에서 ‘Horch & Cie. Motorwagen Werke’를 세우며 독일 자동차 산업의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내부 갈등 끝에 회사를 떠난 그는 1909년 새로운 브랜드를 설립했다. 이미 자신의 이름이 상표로 등록되어 있던 탓에, 그는 라틴어로 ‘듣다’라는 뜻의 단어 Audi를 선택했다. 그 이름에는 기술의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장인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1932년, 아우디는 Horch, DKW, Wanderer와 함께 Auto Union AG를 결성했다. 이때 탄생한 네 개의 고리 로고는 각각의 브랜드를 상징했으며, 지금까지 아우디의 정체성을 대표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산업이 폐허 속에서 재건될 때, Auto Union은 인골슈타트로 본사를 옮겨 새로운 출발을 준비했다. 그리고 1969년, Auto Union은 NSU와 합병하여 Audi NSU Auto Union AG로 거듭났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아우디는 폭스바겐 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편입되며, 기술 중심의 이미지와 고급화를 병행하는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아우디는 세상을 놀라게 할 기술 혁신으로 다시 등장했다. 1980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아우디 콰트로(Quattro)’는 사륜구동을 고성능 승용차에 적용한 첫 시도였다. 이 기술은 모터스포츠에서의 압도적인 성과로 이어졌고, 아우디는 곧 ‘기술 브랜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때부터 “기술로 앞서간다”는 문장은 단순한 구호가 아닌 철학이 되었다.
1990년대, 아우디는 디자인과 공학의 균형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했다. 알루미늄 차체 기술을 적용한 A8, 공기역학적 라인을 살린 TT 쿠페, 그리고 A4·A6 시리즈는 기술적 완성도와 미적 감각을 모두 갖춘 모델로 평가받았다. BMW가 ‘운전의 즐거움’을, 벤츠가 ‘전통의 품격’을 상징했다면, 아우디는 ‘정제된 기술의 미학’을 내세우며 독일 3사의 균형 축을 완성했다.
Ⅱ. 전동화의 전환, 기술의 언어를 바꾸다
21세기 들어 자동차 산업은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탄소 중립과 에너지 효율이 핵심 의제가 되면서, 내연기관 중심의 산업 구조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게 됐다. 아우디는 이러한 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한 브랜드 중 하나다. 2019년, ‘Vorsprung 2030’이라는 장기 전략을 통해 2026년 이후 내연기관 신차 개발을 중단하고, 2033년까지 전 세계 판매 차량의 100%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 전략의 상징적 모델이 Q4 e-tron, Q8 e-tron, RS e-tron GT다. 특히 RS e-tron GT는 포르쉐 타이칸과 동일한 플랫폼을 공유하면서도 아우디 특유의 정제된 주행 감성과 디자인을 유지했다. ‘전기차도 감성의 공학이 될 수 있다’는 브랜드 메시지를 이 차 한 대가 입증했다. 아우디의 전동화 전략은 단순한 기술 이전이 아니라, 브랜드 언어 전체를 재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우디는 동시에 글로벌 기술 생태계와의 협업에도 적극적이다. 중국 시장에서는 상하이자동차(SAIC)와 협력해 현지 맞춤형 전기차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으며, 출시 속도를 30%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의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Rivian)과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협력을 맺어, 2028년 이후 일부 모델에 리비안의 운영체계를 통합할 예정이다. 독일 제조사들이 자존심으로 여겨온 ‘자체 기술 중심주의’를 넘어서는 결정이다.
그러나 전동화는 새로운 리스크도 동반한다. 내연기관 시대의 공급망과 생산구조가 붕괴되면서 수만 명의 인력 재배치가 필요해졌다. 아우디는 2029년까지 약 7,500명의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밝혔지만, 동시에 수십억 유로를 연구개발과 공장 현대화에 재투자할 계획을 내놨다. 효율화와 혁신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고전적인 산업 구조조정의 실험이 지금 인골슈타트에서 진행 중이다.
Ⅲ. 수치로 드러난 전환의 속도
2024년 기준으로 아우디의 매출은 645억 유로, 순이익은 약 41억 유로였다. 전년 대비 매출은 소폭 상승했지만, 전환 비용과 관세 부담으로 영업이익률은 낮아졌다. 그러나 전기차 부문만큼은 예외였다. BEV(순수 전기차) 판매가 전년 대비 32% 증가했고, RS e-tron 시리즈의 글로벌 판매량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내연기관의 감소를 전동화가 일정 부분 상쇄한 셈이다.
상반기 실적을 보면 더욱 뚜렷하다. 2025년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5.3% 증가한 326억 유로였고, 영업이익은 11억 유로를 기록했다. 차량 인도량은 약 79만 대로 6% 감소했지만, 전기차 점유율은 전체 판매의 15%를 넘어섰다. 단기적 손익은 압박을 받고 있지만, 장기적 전환 속도는 확실히 가속 중이다.
아우디는 미국 수입관세 인상과 유럽 내 경기 둔화로 인해 연간 실적 전망을 다소 하향 조정했다. 대신 중장기 목표를 상향했다. 2030년까지 연간 200만 대 판매, 전기차 비중 60%, 영업이익률 10% 달성을 새 목표로 설정했다. 글로벌 시장의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기술 중심 브랜드로서의 자신감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다.
Ⅳ. 미래를 향한 실험, 기술의 감성을 되찾다
아우디의 변화는 단지 엔진의 전환이 아니라, 디자인과 철학의 재구성이다. 최근 공개된 ‘Concept C’ 전기 스포츠카는 ‘급진적 단순함(Radical Simplicity)’이라는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제시했다. 과거의 화려한 곡선을 버리고, 정제된 선과 빛의 균형을 통해 정숙함 속의 긴장감을 표현한다. 기술이 미학으로 진화하는 순간이다.
이런 디자인 철학은 브랜드의 근원적 가치를 복원하려는 시도로도 해석된다. 기술이 복잡해질수록, 사용자는 단순함을 원한다. 아우디는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기술”이야말로 현대의 럭셔리라고 정의한다. 이 관점은 브랜드 전반에 걸친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 하나의 변화는 모터스포츠 복귀다. 아우디는 2026년, 사우버(Sauber) 팀과 손잡고 포뮬러 1(F1)에 공식 복귀한다. 엔진과 섀시, 소프트웨어까지 자체 개발하며, 레이싱 기술을 다시 양산차에 피드백하는 구조를 복원할 예정이다. 1980년대 콰트로가 그러했듯, 기술의 실험은 결국 브랜드의 상징으로 귀결될 것이다.
결국 아우디의 도전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기술은 인간의 감성을 대체할 수 있는가?” 아우디의 대답은 여전히 “아니오”다. 대신 그들은 기술이 감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Vorsprung durch Technik’이라는 문장은 이제 ‘기술로 감동을 만든다’는 새로운 의미로 읽힌다.
아우디의 엔지니어들은 오늘도 인골슈타트의 조용한 공장에서 새로운 시대의 리듬을 설계하고 있다.
그 리듬은 더 이상 피스톤의 진동이 아니라, 전류의 흐름이다.
그들은 여전히 듣는다. ‘Horch’, 즉 듣는다는 그 오래된 이름처럼, 세상의 기술과 인간의 감정을 함께 듣는다.
그 소리가 언젠가 또 한 번 세상을 움직일지도 모른다.
아우디의 네 개의 고리는 다시 한 번 미래를 향해 회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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