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향기를 간직한 살롱 드 테
1903년, 파리 리볼리 거리에는 작은 살롱 드 테가 문을 열었다. 주인은 오스트리아 출신 제과사 안토완 뤼펠마이어였고, 그는 이곳에 자신의 며느리 이름을 붙였다. 그때부터 앙젤리나(Angelina)라는 이름은 단순한 카페를 넘어 파리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살롱 내부는 벨 에포크 양식으로 꾸며졌다. 흰 대리석 기둥과 황금빛 장식,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곡선이 어우러진 인테리어는 파리지앵들에게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선사했다. 이곳은 곧 예술가와 지성인, 패션 디자이너와 문인들이 모이는 아지트가 되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곳에서 글을 쓰며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고, 코코 샤넬은 창가 자리에 앉아 오후의 차와 디저트를 즐겼다.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오르 역시 즐겨 찾던 손님이었다. 앙젤리나는 이렇게 시대의 아이콘들과 함께 호흡하며 ‘파리의 살롱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성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앙젤리나는 파리를 방문하는 모든 여행객들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장소가 되었다. 긴 줄을 서서라도 맛봐야 할 디저트가 있었고, 그 안에서 파리만의 우아함과 여유를 체험할 수 있었다. 앙젤리나는 단순한 디저트숍이 아니라, 파리의 정신을 담은 무대였던 것이다.
뉴욕에서 다시 태어난 ‘작은 파리’
세기가 바뀌고, 세계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해외로 진출하는 시대, 앙젤리나 역시 긴 고민 끝에 대서양을 건너기로 결정했다. 파리 밖 첫 번째 공식 매장의 무대는 뉴욕 맨해튼이었다.
2020년 11월, 앙젤리나는 브라이언트 파크 인근에 3,000제곱피트 규모의 살롱 드 테를 열었다. 약 60석 규모의 공간은 파리 본점의 벨 에포크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현했고, 외부 간판과 내부 디테일 곳곳에 ‘작은 파리’가 녹아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오픈 시점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제선 항공편이 끊기고, 전 세계가 봉쇄의 공포 속에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 역설적인 상황이 오히려 앙젤리나에게 기회가 되었다. 파리에 가지 못하는 뉴요커들에게 이곳은 비행기 없이도 경험할 수 있는 파리였다.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이곳을 찾았고, 주말이면 관광객과 가족 단위 방문객이 몰려들었다. 브라이언트 파크를 산책하다가 따뜻한 핫초콜릿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앙젤리나에 들어오는 것은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앙젤리나는 팬데믹 시대 뉴욕 도심 속 ‘탈출구’가 되었던 것이다.
성공적인 안착 이후, 앙젤리나는 업퍼 이스트 사이드에도 지점을 열었다. 프랑스 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은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며, 단순한 디저트숍을 넘어 뉴욕 속 프렌치 커뮤니티의 구심점이 되었다. COO는 “파리에서의 경험을 뉴욕에서도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뉴욕 언론들은 이를 두고 “앙젤리나는 파리를 맨해튼에 이식했다”고 평가했다.
시그니처 디저트, 뉴욕의 미각을 사로잡다
앙젤리나가 뉴욕에서도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대표 메뉴의 힘이었다.

- 몽블랑(Mont Blanc)
머랭과 생크림 위에 밤 크림을 얇은 실처럼 얹어 만든 이 디저트는 앙젤리나의 상징이다. 달콤하지만 과하지 않고, 가벼우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뉴욕 매장에서도 파리 본점의 레시피 그대로 재현되며, 현지 미식가들로부터 “뉴욕에서 만난 최고의 프렌치 디저트”라는 찬사를 받았다. - Chocolat l’Africain
‘푸딩에 가까운 핫초콜릿’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진한 농도의 음료다. 작은 주전자에 담겨 나오는 초콜릿은 컵에 따라내는 순간부터 진득한 향을 퍼뜨린다. 겨울의 브라이언트 파크 아이스링크를 즐긴 후, 이곳에서 마시는 핫초콜릿 한 잔은 뉴욕만의 특별한 파리지앵 경험이 된다. - 현지 맞춤 메뉴
뉴욕 고객층을 고려해 앙젤리나는 브런치 세트, 가벼운 런치 메뉴, 다양한 마카롱과 케이크 라인업을 더했다. SNS 세대는 이곳에서 디저트를 사진으로 남기며, 파리 감성과 뉴욕의 트렌드를 동시에 즐긴다.
결국 앙젤리나는 전통과 현대, 파리와 뉴욕, 예술적 감성과 상업적 감각을 균형 있게 엮어내며 성공적인 현지화를 이뤄냈다.
그래서 앙젤리나는…
앙젤리나는 파리에서 시작해 120년을 이어온 역사 속에서, 늘 그 시대의 문화를 담아내는 무대였다. 그리고 지금, 뉴욕 브라이언트 파크와 업퍼 이스트 사이드에서 또 다른 무대를 펼치고 있다.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문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뉴요커들은 이곳에서 파리의 감성을 발견하며 열광했다.

시그니처 디저트인 몽블랑과 쇼콜라 라프리캥은 뉴욕에서도 여전히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이 두 메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을 전달하는 ‘맛의 언어’였다. 여기에 브런치 세트와 마카롱 같은 뉴욕 맞춤 메뉴가 더해져, 젊은 세대부터 전통적인 미식가까지 모두를 사로잡았다.
앞으로 앙젤리나가 걸어갈 길은 더욱 흥미롭다. 뉴욕에서의 확장은 단순히 디저트숍의 해외 진출 사례가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 문화가 맨해튼의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과정이다. 파리에서 태어난 살롱 드 테가 이제는 뉴욕의 거대한 스카이라인 아래에서 새로운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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