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nut Pub — 뉴욕의 밤을 지키는 달콤한 불빛

24시간 문을 여는 클래식 도넛 바, 반세기를 이어온 뉴욕의 달콤한 전설

1964년, 한 장인의 꿈이 시작되다

뉴욕의 오래된 거리를 걷다 보면 유난히 따뜻한 빛을 내는 간판이 있다. 네온사인 속 흰색 글씨로 적힌 “The Donut Pub.”
이곳은 단순한 도넛 가게가 아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뉴욕의 밤과 새벽을 함께 지켜온,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1964년, 브루클린 출신의 젊은 사업가 버지(“Buzzy”) 게둘드(Buzzy Geduld) 는 한 가지 단순한 생각으로 이 가게를 열었다. “누구나 편하게 들어와 커피 한 잔과 따뜻한 도넛을 즐길 수 있는 곳.” 당시 그는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숫자와 긴장의 세계에서 살던 그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필요로 하는 ‘작은 휴식의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문을 연 The Donut Pub은 처음부터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게 문을 여는 순간 퍼지는 버터와 설탕, 이스트의 향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퇴근길 노동자, 심야 공연을 마친 예술가, 새벽까지 공부하던 학생, 그리고 도시의 외로움 속에서 잠시 멈추고 싶은 이들 모두에게 이곳은 작은 피난처였다.

그의 철학은 단순했지만 명확했다.
도넛은 사람을 웃게 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이 철학은 지금까지도 매장 운영의 핵심 정신으로 남아 있다.

웨스트 빌리지의 본점(203 W 14th Street)은 60년 가까이 그 자리 그대로를 지키고 있다. 대리석 카운터, 크롬으로 빛나는 스툴, 오래된 타일, 그리고 반원형 진열대 위에 놓인 다양한 도넛들. 모든 것이 1960년대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후 The Donut Pub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확장되었다. 2019년에는 애스터 플레이스(Astor Place) 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고, 최근에는 전국 배송을 시작했다. 온라인 플랫폼 Goldbelly를 통해 미국 전역 어디서든 도넛을 주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창업자 게둘드는 여전히 본점 카운터에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그에게 이곳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뉴욕을 지키는 작은 불빛”이기 때문이다.

도넛의 미학 — 클래식과 혁신의 공존

The Donut Pub의 가장 큰 매력은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섞여 있다는 점이다.
유리 진열대에는 1960년대 방식으로 만든 클래식 도넛과, 현대적 재해석이 더해진 신메뉴가 나란히 놓인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가장 기본적인 메뉴는 여전히 ‘글레이즈드 도넛(Glazed Donut)’이다.
얇은 설탕 코팅 아래 촉촉하고 가벼운 반죽이 살아 있다. 도넛을 반으로 쪼개면, 미세한 공기층이 균일하게 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공기감이 바로 이곳의 비결이다. 전통적인 발효법과 낮은 온도의 튀김 방식 덕분에 도넛이 기름지지 않고 부드럽다.

프렌치 크룰러(French Cruller)’ 역시 이 가게의 시그니처 중 하나다.
에클레어 반죽을 튀겨 만든 도넛으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크림처럼 부드럽다. Yelp나 TripAdvisor 등 여러 리뷰에서도 “뉴욕에서 가장 완벽한 크룰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이곳을 대표하는 현대적 메뉴는 단연 ‘크루아상 도넛(Croissant Donut)’이다.
크루아상의 결을 유지하면서 도넛의 형태로 구워낸 하이브리드 제품이다. 특히 ‘메이플 베이컨 크루아상 도넛’은 가장 인기 있는 메뉴로 꼽힌다.
바삭한 결 사이로 스며든 단풍 시럽의 단맛과 짭조름한 베이컨 조각의 조화는 완벽에 가깝다. Reddit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이 집의 메이플 베이컨 크루아상은 천상의 맛”이라는 평이 자주 올라온다.

이 외에도 코코넛 크림, 젤리, 블랙 앤 화이트 쿠키, 허니 디핑 등 20여 가지의 메뉴가 있다.
모두 견과류를 사용하지 않은(nut-free) 제과로 만들어져,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도 안심하고 즐길 수 있다. 창업주 게둘드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도넛집”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신념 중 하나였다고 밝힌 바 있다.

특이하게도 이곳에서는 도넛뿐 아니라 간단한 샌드위치 메뉴도 제공한다.
뒤쪽 카운터에는 작은 그릴이 있고, 손님이 원하면 버터를 발라 따뜻하게 구운 샌드위치를 만들어준다. 17가지 정도의 기본 메뉴가 준비되어 있으며, 커피와 함께 간단한 식사 대용으로 주문하는 이들이 많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맛의 본질은 단순하지만 정직하다.
달콤하지만 과하지 않고, 오래된 방식 그대로 만들어내는 묵직한 풍미가 있다. 이 가게의 도넛은 ‘세련된 프리미엄 디저트’라기보다는 ‘도시의 일상’에 더 가깝다. 바로 그 점이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는 매력이다.

뉴욕의 시간 속에 녹아든 풍경

The Donut Pub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단지 도넛을 사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뉴욕의 한 장면’을 체험하러 오는 것이다.

가게 안은 크지 않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긴 카운터와, 그 앞에 줄지어 있는 스툴 몇 개가 전부다. 그러나 그 좁은 공간 안에는 뉴욕의 리듬이 있다.
낮에는 출근길 직장인들이 커피 한 잔과 도넛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오후에는 관광객과 학생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밤이 되면 분위기가 바뀐다. 택시기사, 예술가, 공연을 마친 배우들, 병원 근무를 마친 간호사들이 이곳의 불빛을 향해 들어온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벽에는 여전히 1960년대풍의 메뉴판이 걸려 있고,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소다 파운틴(Soda Fountain)’ 스타일의 인테리어가 그대로 남아 있다.
스테인리스 포트에서 커피가 계속 리필되고, 카운터 직원은 늘 빠르게 움직인다. “다음 손님, 글레이즈 두 개랑 초코 크룰러 맞죠?” — 이런 대화는 하루에도 수백 번 반복된다.

무엇보다도 The Donut Pub은 ‘24시간 영업’이라는 상징적인 존재다.
뉴욕의 밤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공간들 덕분이다.
새벽 3시에도 문이 열려 있고, 커피 냄새가 퍼지고, 갓 튀긴 도넛이 유리 케이스 안에서 김을 내뿜는다. 밤늦게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안도감이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손님들 사이에서는 간혹 직원 응대나 위생 문제에 대한 불만도 있다.
공간이 좁다 보니 혼잡할 때는 주문과 수령이 엉키기도 하고, 화장실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시 이곳을 찾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곳에는 진짜 뉴욕이 있기 때문이다.

Eater NY의 2024년 기사에 따르면, The Donut Pub은 최근 ‘Luncheonette’라는 형태의 식사 공간을 확장해 운영 중이다. 이는 단순한 도넛 가게를 넘어 뉴욕식 올드 스쿨 다이너의 복고적 감성을 이어가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이처럼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이 가게의 정체성을 지탱한다.

달콤함을 넘어, 뉴욕의 정체성

뉴욕에는 수많은 디저트 숍이 있다.
도넛만 하더라도 수십 개의 브랜드가 경쟁하고, 트렌드는 매년 바뀐다.
그러나 The Donut Pub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맛있어서”가 아니다.
그 이유는 이곳이 도시의 기억과 감정을 함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60년 동안 수많은 세대가 이 가게를 지나갔다.
처음에는 부모의 손을 잡고 오던 아이가 자라서, 이제는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다시 찾아온다.
“내가 어릴 때 먹던 도넛이 아직 그대로 있어요.”
이런 한 마디는 그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브랜드 스토리다.

[출처: 뉴욕앤 뉴저지, DB 금지]

The Donut Pub의 존재는 뉴욕의 다층적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민자, 예술가, 금융인, 노동자 등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고 도넛을 먹는다.
그 짧은 시간만큼은 모두가 평등하다. 뉴욕의 다양성과 개방성은 이 작은 도넛 가게 안에서도 구현된다.

최근 몇 년간 ‘한 입의 달콤함’을 넘어선 감성 소비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The Donut Pub은 “로컬 헤리티지(Local Heritage)”라는 새로운 가치를 상징하게 되었다.
오랜 역사와 지역 공동체의 기억이 브랜드 자체가 되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많은 뉴욕 시민들이 이 가게를 다시 찾았다.
“위로가 필요할 때, 여기서 커피를 마셨다”는 리뷰가 이어졌다.
그들에게 The Donut Pub은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이었다.

도넛 한 개, 커피 한 잔의 가격은 크지 않다.
그러나 그 안에는 ‘지속되는 일상’이라는 상징이 담겨 있다.
뉴욕의 밤거리가 멈추지 않는 한, 이 가게의 불빛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

맺으며

The Donut Pub은 단순한 디저트 가게가 아니다.
그곳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리듬, 시간,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흡수한 살아있는 문화공간이다.

아침의 직장인, 오후의 관광객, 밤의 예술가, 새벽의 택시기사 —
모두가 이곳을 거쳐간다. 그리고 그들의 하루에는 공통된 기억이 하나 남는다.
“뜨겁고 달콤한 도넛, 그리고 커피 한 잔.”

도시는 수없이 변하지만, 이런 기억이 쌓이는 곳이야말로 진짜 뉴욕이다.
The Donut Pub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말없이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오늘도 유리 진열대 뒤에서는 새로운 도넛이 튀겨지고, 창밖으로 네온사인이 번쩍인다.
그 불빛은 뉴욕의 심장처럼, 밤새 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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