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Crying in H Mart—어머니를 잃고 김치를 안고 운 어느 한국계 미국인의 이야기


“In Korean families, you’re not allowed to say ‘I love you.’ So you say, ‘Have you eaten?’”
— Michelle Zauner, Crying in H Mart


1. H 마트에서 울게 되는 이유

H 마트에서 울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미셸 자우너의 회고록 《Crying in H Mart》는 단지 사적인 슬픔의 기록이 아니라, 수많은 한국계 이민자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감정적 서사를 품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1.5세대 혹은 2세대라면, 부모 세대와의 거리감, 정체성의 혼란, 한국어에 대한 갈등, 한국 음식에 대한 집착 등을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자우너는 H 마트의 진열대를 바라보며 눈물을 터뜨린다. 그곳에 놓인 김치, 갈비, 깻잎, 오징어젓갈은 그녀의 기억 속 어머니의 부엌, 주말 반찬 만들기, 함께한 식탁을 떠오르게 한다. 음식은 단순히 영양소가 아니라, 정체성과 사랑의 은유가 된다.

어머니 정자(Chong-ja) 여사의 암 투병과 죽음은 자우너에게 한국인의 뿌리를 단절당하는 사건처럼 다가온다. 엄마가 없어진 이후, ‘나는 더 이상 한국인인가?’라는 질문이 그녀를 덮친다. 그러나 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해, 다시 정체성을 회복해가는 여정으로 나아간다.


2. 엄격했던 어머니, 이해받지 못했던 딸

《Crying in H Mart》는 단지 모녀 관계의 회고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딸’의 간극을 파헤치는 섬세한 심리 기록이기도 하다. 자우너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평가받고,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억누른 기억들을 꺼낸다. 외모, 성적, 예절, 말투에 이르기까지 정자 여사는 딸에게 한국식 훈육을 고수했다.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는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고국에서 가져온 모든 것으로 딸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주려 했다. 문제는 그 사랑의 언어가 자우너에게는 ‘통제’로 느껴졌고, 한국문화에 대한 ‘시험’처럼 다가왔다는 점이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못하는 자우너에게 어머니는 실망했고, 자우너는 그런 엄마 앞에서 ‘덜 한국인’이라는 열등감에 시달렸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충돌을 미화하지 않고, 고통스럽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미셸 자우너는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는 왜 그토록 서운하고 이해받지 못했는지 분노하며 괴로워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 사랑의 깊이를 되새긴다. 그리고 그 회한의 눈물은 독자인 우리에게 그대로 옮겨온다. “사랑받았지만 이해받지 못했던 딸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3. 음식, 기억, 슬픔: 애도의 한국적 방식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단연코 음식이다. 갈비찜, 김치, 미역국, 비빔국수, 두부조림… 이 음식들은 단지 식사의 기능을 넘어서, 정체성과 감정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어머니를 잃은 미셸은 한국 요리를 스스로 만들기 시작하며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 나아가 한국인으로서의 자아를 되짚는다.

요리는 그녀에게 고통의 치유이자 정체성의 회복, 그리고 애도의 언어가 된다. 엄마가 남겨놓은 김치를 꺼내 김치찌개를 끓이며 그녀는 말한다. “엄마는 없지만, 나는 여전히 그 김치를 끓일 수 있다.” 이 말은 죽음 이후에도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는, 그리고 문화와 정체성 역시 단절이 아닌 ‘계승’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이민자 사회에서 음식은 ‘기억의 유전자’와 같다. 영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사진 한 장으로는 담기지 않는 추억, 그리고 세대를 뛰어넘는 연결 고리가 모두 음식 속에 있다. 한국의 음식을 해먹는 행위는 단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Crying in H Mart》는 음식으로 삶을 기억하고, 음식으로 슬픔을 견디는 ‘한국적 애도의 방식’을 감각적으로 구현해냈다.


4. 한국계 이민자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

미셸 자우너의 이야기는 특정한 개인의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것이 수많은 한국계 미국인, 특히 이민자 가정의 자녀들에게 깊은 공감을 일으키는 이유는 그 감정의 보편성 때문이다. 부모 세대의 기대와 통제를 견뎌내며 성장한 경험, 한국어에 대한 부담감, 한국의 문화와 미국의 가치관 사이에서 방황한 기억, 부모의 노후와 죽음을 겪으며 정체성의 흔들림을 경험한 이들은 자우너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더불어 이 책은 슬픔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 문화에서는 종종 슬픔을 감추고,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자우너는 말한다. 울어야 할 때 울고, 음식이 그리우면 만들어보고, 부모가 떠났다면 그 사랑을 기억 속에서 되새김질하라고. 그런 방식으로 슬픔은 삶으로 전환되고, 상실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출발점이 된다.


결론적으로, 《Crying in H Mart》는 어머니의 죽음을 기록한 회고록이지만, 그 속에는 이민자의 정체성과 모녀 관계, 문화 계승, 음식과 기억, 그리고 사랑의 다양한 표현 방식이 응축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가 왜 H 마트에서 울게 되는지를 설명해주는 가장 섬세하고 진실된 기록이다.

그 눈물은 단지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그 사랑을 갈망했고, 그 문화와 뿌리를 잃지 않으려 애썼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눈물의 이유’를 찾아주는 하나의 등불과도 같다.

당신도 만약 언젠가, H 마트의 반찬 코너 앞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그것이 단지 슬픔이 아니라는 걸, 사랑과 기억, 그리고 정체성이라는 걸 이 책이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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